보도자료

분쟁의 모래바람 속 ‘뜨거운 모성’

홍보팀 | 2014.07.07 19:24 | hit. 2018
[국제]
분쟁의 모래바람 속 ‘뜨거운 모성’
세계평화여성연합 이스라엘서 중동평화와 상처 치유 행사
암만(요르단)·예루살렘(이스라엘)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5월 14일 이스라엘 국회에서 열린 중동평화 세미나 모습.

5월 13일 오전 이스라엘 제파트(Zefat)의 지프 의료센터(Ziv Medical Center)로 가는 길. 세계평화여성연합(WFWP·회장 문난영·여성연합) 회원 40여 명과 기자를 태운 대형버스는 뱀 똬리 틀 듯 돌돌 말린 도로를 따라 고원(高原)을 힘겹게 오른다. 짐짓 5m 높이는 돼 보이는 야자수와 넓고 둥그렇게 펼쳐진 상수리나무는 코발트빛 하늘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고원에 오를수록 저 멀리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갈릴리 호수. 예수가 제자들을 모으고 군중을 가르치며 평화로운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 환영이 보일 만큼 아슴푸레하다. 고원 정상 부근에 세워진 지프 의료센터는 간판을 보지 않았다면 휴양시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즈넉하다.

그러나 풍경과 현실은 달랐다. 시리아와 직선으로 30km, 레바논과는 11km 거리에 세워진 지프 의료센터는 공습과 내전으로 다리가 절단된 응급환자들의 피난처였다. 66년 유대인의 대로마반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해발 900m 고원 도시 제파트는 2000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선혈을 닦아내고 있다.

“2013년 2월 이후 288명의 시리아 환자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중 17%가량이 어린이인데, 폭격으로 가족이 몰살당해 혼자 온 어린이도 있었죠. 밭을 갈던 농부가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되거나, 심지어 저격수에 의해 총상을 당한 시민들도 있어요. 시리아 국경에서 2~3일 걸려 병원에 도착하기 때문에 응급치료를 받지 못해 감염 환자가 많습니다.”

암람 하다리(Amram Hadary) 트라우마 본부 센터장은 최근에는 인근 시리아 내전으로 환자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지프 의료센터 방문은 여성연합이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중동평화를 모색하려는 행사 중 하나. 여성연합은 분쟁지역에 신뢰와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뜻에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고(故) 문선명, 한학자 총재의 뜻에 따라 창설돼 2004년부터 중동에서 평화활동을 시작했다.

응급환자 피난처 지프 의료센터

5월 15일 이스라엘 동예루살렘 올드 시티에서 평화 행진에 나선 활동가들.

앞서 여성연합은 5월 9~11일 ‘중동과 세계의 평화와 조화를 위한 여성들의 파트너십’이라는 주제로 18차 중동여성평화회의를 열었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 대만 등 26개국 종교 지도자와 활동가 200여 명은 “여성 평화지도자들이 교육과 협력, 연대를 통해 폭력과 희생을 종식해야 한다”며 여성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했다.

세미나에서는 중동평화 구축을 위한 방안으로 ‘가족중심주의’(familiarchy)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가족 단위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계를 발전하고, 남녀가 가족 내에서 동등한 역할 부담을 통해 책임을 공유하면서 평화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자는 주장이었다. 세미나 중간에는 중동평화를 위한 방안을 두고 각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이 싸움 직전까지 가는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대회에서는 이스라엘인 참가자가 중동인들과 설전을 벌이다 잠시 기절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를 이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단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게 평화 조성의 첫걸음”이라는 게 문 회장의 설명이었다.

중동평화회의 마지막 날 회의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2009년 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당시 폭격으로 세 딸을 잃은 이젤딘 아부엘아이시 캐나다 토론토대 의대 교수가 비극적 최후를 맞은 딸들의 사진을 보여줄 때였다. 그가 “어머니와 부인, 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상자기사 참조).

중동평화회의 후 5월 12일 여성연합 한국지부 회원 40여 명은 이스라엘로 향했다. 13일 지프 의료센터를 방문해 난민 의료지원 실태를 점검한 것을 시작으로 15일까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중동평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에서 열린 중동평화행사는 2004년 41개국 여성 526명이 이스라엘 동예루살렘 일대에서 평화행진을 한 것을 기념해 여성연합과 천주평화연합(UPF)이 공동 개최한 것이었다.

5월 14일 오후 이스라엘 국회 크네세트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구축과 화해’ 세미나에선 중동평화에 대한 실질적인 주문이 쏟아졌다. 주제발표에 나선 란 코헨 전 크네세트 의원은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 67%가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대(對)이스라엘 로켓 공격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인 70%가 평화협상을 지지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여 명 통곡의 벽까지 행진

이스라엘 행사의 백미는 세계 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여 있는 동예루살렘 올드 시티 대행진. 5월 15일 올드 시티 입구인 자파 게이트에 모인 17개국 종교지도자와 활동가 200여 명은 평화를 의미하는 ‘피스(Peace)’와 ‘샬롬(Shalom·히브리어로 ‘평화’란 뜻)’을 번갈아 외치며 자파 게이트에 들어섰다. 이들은 어른 2~3명이 오가는 미로를 지나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 ‘통곡의 벽’까지 행진하며 중동평화를 기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시리아 내전, 이슬람과 서방의 충돌 등 남성이 벌여놓은 문제를 분쟁의 가장 큰 희생자인 여성이 나서서 치유하려는 노력은 자못 역설적이었다.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 사랑이라는 모성(母性)으로 중동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인터뷰 | 세 딸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 이젤딘 아부엘아이시 교수
“증오는 우리를 파괴…용서가 곧 복수”


이젤딘 아부엘아이시(59·사진) 토론토대 의대 교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을 해결하려면 이스라엘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상대를 용서하는 게 최고의 복수”라고 말했다. 5월 11일 암만 랜드마크호텔에서 만난 그는 딸들의 죽음을 복수하기보다 딸들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려내는 길을 걷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당신에게 ‘피의 복수’를 원했을 거 같은데 당신은 용서를 했다.
“증오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없게 하는 전염병이다. 우리를 파괴한다. 증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같이 보이지만 또 다른 증오를 불러올 뿐이다.”

팔레스타인인의 ‘복수 방법’은 당신과 다르다고 보나.
“팔레스타인인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자유를 위해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응하는 거다. 생각해보라. 전기도, 물도 없는 이 공간(인터뷰룸)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당연히 벽을 치며 외부에 알릴 거 아닌가.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 그런 처지다.”

중동평화는 요원한가.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인간은 모두 같다.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오만함은 지구촌 문제의 근원이고, 증오는 우리를 파괴한다. 서로를 존중해야 평화도 온다.”

‘Daughters for Life’ 재단을 만들어 여성의 교육과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꿈 많던 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또 다른 중동의 딸들이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먼저 간 딸들이 진정 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폭력과 사회적 관습 앞에서 희생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1955년 가자 난민 캠프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아부엘아이시 교수는 2009년 1월 이스라엘의 가자공습 당시 아이들 방 바로 옆 응접실에서 이스라엘TV 기자와 가자지구 참상에 대해 생방송 전화인터뷰 중이었다. 딸들이 당한 참사는 발생 순간부터 고스란히 서방으로 전파를 탔고, 가자지구 공습이 중단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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