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W 참석기] 뉴욕에서 마주한 여성, 평화, 그리고 영향력의 방향

 UN CSW70 연수 기행문 (세계평화여성연합 한국본부 유효재 차장

 
 

유엔본부 앞에서  (왼쪽부터 최묘선 여성연합 간사, 박유미 참가자, 후쿠이 소노미 참가자, 김고은 여성연합 한국회장, 강가희 참가자, 전지수 여성연합 차장, 이홍주 여성연합 과장)

 

 

 

36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이번 여정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이번 연수는 단순한 해외 방문이 아니라, 국제사회 속에서 여성과 평화라는 의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정책으로 연결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NGO 단체 실무자로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 왔지만, 그 활동이 글로벌 의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늘 간접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경험은 그 간극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유엔기와 조각상                                                                                         (▲) WFWPI 포럼 단체 사진    /  (▼) WFWPI 포럼             
 
 
 
 

뉴욕 JFK공항에 도착 첫 날 유엔 패스를 손에 쥐는 순간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우리가 받은 유엔 패스는 두 종류로 유엔의 가이드 투어로 허용된 녹색 방문증과 CSW70이 열리는 기간 내내 출입이 가능한 파란색 출입증이 바로 그 것.

유엔 가이드 투어 날, 마침 예정되었던 국제회의가 모두 취소되면서 평소에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유엔의 모든 공식 회의장(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총회회의장)

직접 둘러보게 된 순간은, 이번 여정이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특별한 기회로 시작되었음을 직감하게 한 뜻밖의 행운이었다.

 

안보리 회의장에 들어선 순간 노르웨이 화가 페르 크로그(Per Krohg)의 벽화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벽화는 전쟁의 혼돈에서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고, 뉴스에서만 보던 차가운 회의장이 인류의 평화를 향한 뜨거운 염원이 담긴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 유엔총회 회의장   /  (▼)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   /  (▼) 경제사회이사회 회의장                         
 
 
 
 

연수 초반에 진행된 12일간의 WFWPI 권리옹호 워크숍은 NGO 활동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강조된 핵심은 명확했다.

현장 활동은 단순한 실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축적되고 정책 제안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의 사례를 통해 현장 → 데이터 → 정책 → 국제 의제로 연결되는 흐름을 확인하면서, 기존 활동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는 과연 활동을 기록하고 축적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경험으로 소비하고 있는가. 

 

 

권리옹호 워크숍 수료식

 

 

UN CSW70 본회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인 여성과 소녀의 사법 접근성은 법률문제를 넘어, 경제·교육·문화 등 다양한 구조적 요소가 얽혀 있는 복합적 이슈였다.

각국 대표단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것은 동일한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어떤 국가는 제도 개혁을 강조했고, 또 다른 국가는 인식 변화와 교육을 중심으로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국제 의제는 보편적이지만 실행은 철저히 맥락적이라는 사실이었다.


 

       CSW70 개회식                                                                                                  사이드 이벤트 (AFG to Justice)

 

 

유엔 본부에서 열린 사이드 이벤트 “No Peace Without Women”은 특히 인상 깊었다.

이 세션에서는 여성의 평화 협상 참여가 단순한 권리 보장이 아니라, 평화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제시되었다.

 

이 논의를 통해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여성의 참여를 실제로 구조 속에 반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보완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가.

 

 

사이드 이벤트(No Peace Without Women) 전경

 

 

 NGO CSW 병행포럼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현장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의 사법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가정 내 역할 고정, 경제적 의존, 돌봄 부담 등이 제시되었고,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 논의를 통해 기존 활동의 한계도 명확해졌다.

인식 변화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한-대 병행포럼                                                                                                           DMZ 포럼

 

 

 또한 통일된 한국에서의 여성과 청소년의 역할을 주제로 한 포럼은 현재 진행 중인 통일·평화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시사점을 제공했다.

통일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정서적 치유와 사회적 신뢰 회복의 과정이라는 관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는 향후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CSW70 공식 포토월 앞에서 호리모리꼬 여성연합 세계회장과 함께(가운데)

 

 

연수 중간에 진행된 도시 탐방 역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뉴욕의 다양한 문화와 일상을 직접 체감하며, 국제사회는 회의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 속에서도 형성된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평화가 단순한 정치적 상태가 아니라,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적 역량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  (▼) 부르클린 브릿지 배경으로                                 (▲) 맨하튼 야경 배경으로   /  (▼) 맨하튼 브릿지 배경으로                         

 

 

연수 후반으로 갈수록, 관찰자였던 시선은 점차 참여자로서의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특히 참가자들과의 소감 공유 시간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질문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이 경험을 어떻게 현장으로 가져갈 것인가?”

 

이번 연수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핵심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NGO 활동은 현장 중심에서 정책 연결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은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다.

셋째, 여성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국제회의 참여 자체가 영향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많은 NGO들이 회의에 참여하지만, 정책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이는 영향력이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근거 + 지속적 관계 형성 + 전략적 메시지 설계

라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될 때 비로소 형성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라,
영향력을 설계하는 조직과 프로그램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귀국을 앞두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이번 여정을 다시 정리해 보았다.

처음에는 무엇을 배우고 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더 크게 남았다.

 

뉴욕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변화가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장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이번 여정의 의미는 하나로 정리된다.

 

이것은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다.”

 


유엔본부 앞 유엔기 배경 단체사진